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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ssay

진정한 나

Gunn the Seeker 2024. 11. 17. 21:03

귀를 뚫었다. 이번에도 귓불이다. 벌써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의 ‘귀 뚫기’와 이번 ‘귀 뚫기’가 다른 점은 일반 귀걸이로 뚫은 것이 아니라 피어싱을 했다는 것이다. 피어싱의 핀은 귀걸이의 핀보다 약 1.5배에서 2배 정도 두껍다. 그래서 귀걸이를 뚫을 때보다 더 아플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리 아프진 않았다. 물리적인 아픔보다 마음 속 저편에 있던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는 귀걸이를 할 때마다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직 남성의 귀걸이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약간의 반항심을 표출하고 싶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이 귀걸이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뽐내는 것을 보고 무의식에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피어싱을 한 내 귀를 내놓고 다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나는 피어싱을 했을 때 온전한 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피어싱을 하면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나는 국내에서 경력이 오래된 피어서(piercer)가 있는 ‘C스튜디오’에 방문했다. 역시 베테랑 피어서의 연륜에서 오는 테크닉은 달랐다. 그의 화두로 스몰토크가 가감없이 오갔으며 나는 그와 짧은 시간 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피어서와의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그러다 나의 말씨를 듣던 그는 나의 고향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대구 출신이라고 답했고, 현재 어색한 서울말씨가 섞여 있는 나의 말투에 대한 피어서의 일침이 인상적이었다.

“야, 그런 말투 전혀 너답지 않아. 그냥 대구 말 써.”

피어싱처럼 뚫고 들어오는 그의 침언(鍼言)을 듣고 나는 바로 대구 사투리를 사용했다. 그러자 피어서는 흡족한 듯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너답다.”

그 말을 듣자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사투리를 섞은 내 말들이 내 입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나는 처음에 대구에서 귀를 뚫었고 두 번째는 압구정로데오에서 뚫었다는 이야기부터, 두 번째로 귀를 뚫고 나서는 귀가 너무 심하게 곪아서 고생했었다는 이야기까지. 피어서와의 대화는 물을 흐르듯이 흘러갔고 어느샌가 내 귓불에는 한 쪽씩 차례대로 피어싱 니들이 꽂혀 있었다. 글 초입에 내가 피어싱을 하면서 온전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나. 그러나 피어서의 조언을 듣고 사투리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보다 더 온전한 ‘내가 되었음’을 느꼈다.

사실 나는 서울 살이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다. 대구 사투리를 쓸 때마다 누군가는 매력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듣기 싫다고 했다. 양쪽의 의견을 듣고 나 자신이 계속 저울질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도저도 아닌 경상도 억양의 서울 말씨였다. 물론 고향 땅을 밟자마자 그것은 언제 썼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이것은 서울에 사는 김건준에게서만 보이는 특수한 모드(mode)이다.

거의 10년을 그런 모드로 살았는데, 노련한 피어서의 조언 덕분에 나는 그런 작위적인 모드로 사는 것보다 나답게 사는 것이 진실된 것임을 깨달았다. 피어싱을 뚫어서 느끼는 행복감보다 더욱 큰 희열을 느꼈다. 앞으로 진실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말씨가 아니라 진짜 내 말투를 쓰자. 앞으로 달라진 나 자신이 기대된다. 귓불에 달려 있는 바벨 덕분에 외적으로도 개성 있게 변화했다. 하지만 나의 내면이 외면보다 더욱 다채로운 색을 내며 변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한 번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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