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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ssay

표현이 전부다

Gunn the Seeker 2024. 3. 31. 01:37

표현이 전부다.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은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에게도 매번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보, 당신 하면서 계속 표현해주면 얼마나 좋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런 잔소리를 곧잘 하셨다. "내는 그런 거 모한다(나는 그런 거 못한다)." 부끄러워하시는 아버지 말씀에 어머니는 당당히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희 아빠랑 결혼할 건데~ 참 안 도와주네!"

여기서 표현은 자신의 호의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표현이 지속되면 좋은 인간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표현의 첫걸음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렇다면 나는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일까? 못하는 사람일까? 돌이켜 보면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딱 반반씩 닮은 것 같다. 표현에 적극적일 때가 있고, 표현에 인색할 때가 있다.

먼저 표현에 적극적인 자아는 내 친구들, 또는 손아랫사람들을 향해 있을 때 발현된다. 그들 앞에 있을 때 나는 수도 없이 표현을 한다. '사랑한다!'는 내가 친구들에게 자주하는 표현이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의 사랑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다소 오글거리는 말을 했을 때 엷은 미소를 띠며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우리가 서로 각자의 형태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럴 때 보면 어머니의 자아가 내게 완벽히 복제되었다.

그러나 표현에 인색할 때 나의 자아는 손윗사람을 향해 있을 때 발현된다. 솔직히 나는 손윗사람이 불편하다. 괜스레 더 격식 있게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나의 머릿속은 항상 바쁘다. 그럴 때마다 입에 "감사합니다"가 무조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가끔 이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붕 뜨는 경우가 있다. 그때 눈치 빠른 사람들은 말한다. '가끔 건준이가 가식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표현에 인색한 아버지의 자아가 완벽히 계승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이따금 손윗사람들에게마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방송인 박명수의 유튜브 방송 <할명수>에 가수 아이유가 출연한 것을 봤다. 방송을 통해 아이유가 타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아이유는 매년 명절마다 박명수에게 안부 인사 메시지와 선물을 보낸다고 한다. 나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타인에게 표현하는 아이유의 표현력에 존경심을 느꼈다.

나는 손윗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인색했고,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들이 항상 나를 떠나가게 내버려뒀다. 나도 그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었는데. 아이유를 보며 어떻게 하면 손윗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주말 본가에 내려갔을 때 일이다. 집에 벨트를 놓고 와서 역 앞까지 어머니가 자가용으로 나의 벨트를 가져다 주셨다. 어머니는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벨트를 건내주며, 역 앞까지 차로 태워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씀하셨다. "벨트를 갖다줄 줄 알았으면 애초에 역까지 태워줄 걸. 미안했데이!" 어머니의 솔직한 표현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은 단순했다. 어머니처럼, 아이유처럼 '그냥' 하면 된다. 나는 왜 이제껏 윗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바라면서 한편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걸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체면치레를 내세울 게 아니라 내가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그냥' 표현하면 된다. 내가 약간의 부담감을 느낄지라도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등의 표현으로 시작하면 된다. 윗사람에게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냥 하면 된다. 정녕 표현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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