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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k_pop #국내힙합 #k_hiphop

에세이 Essay

실속

Gunn the Seeker 2024. 5. 2. 21:20

실속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주제는 국내외 힙합. 지금까지 몇 편의 글을 썼다. 어떤 래퍼의 관한 소개부터 어떤 싱글 앨범에 대한 이야기, 힙합 씬에서 유행하는 소식 등을 소재로 글을 썼다. 지금까지 쓴 글들을 찬찬히 블로그에 옮기며 다시 읽었는데, 이렇다할 실속이 없었다. 나의 통찰 혹은 나만의 표현법이 나타나는 지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글은 왜 실속이 없게 느껴지는 것일까? 잠시 고민을 해본다.

글을 쓰면서 항상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예전에 한 소설가가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글은 읽히기 쉬운 글이라고. 그 말이 계속해서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나는 누구나 내 글을 술술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글의 밀도를 낮추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선택을 했다.

예를 들어 래퍼 씨잼의 <킁>이라는 앨범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했을 때, 나는 씨잼과 앨범에 관한 설명-씨잼이 어떤 커리어를 거쳤다는 등-에 초점을 맞췄다. <킁>은 한국힙합 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킁>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깊이감 있게 서술하는 것보다, 누구나 구글에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을 법한 내용을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선택은 큰 오산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글을 장황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실속을 주는 부분이 없었다. 설명에 설명을 덧붙이니 분량 조절이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글의 핵심이 있을 부분이 무게감과 진정성을 잃었다. 막상 글을 쓸 때는 ‘이 정도면 잘 쓴 거겠지’하며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이것은 타협과 자기 합리화였다. 겉으로 글을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유려했다. 이제서라도 외강내유의 글쓰기 습관을 고쳐야 한다.

결국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실속이 있는 글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통찰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비록 그 통찰이 독자의 기존 생각과 달라도 실속이 있다면 그 간극을 메워주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읽는 이에게 또다른 영감이 될 수도 있다. 실속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수준에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다짐하며 확신이 들지 않는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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