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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k_pop #국내힙합 #k_hiphop

에세이 Essay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Gunn the Seeker 2024. 10. 31. 23:36

10월 말부터 국비지원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전직 방송국 PD 출신의 강사진에게 영상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대해 배우고 있다. 평소 좋아했던 일을 전문가들에게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으니 저절로 흥미가 붙는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부터 6시까지 교육원에서 강좌를 수강해야 하는 스케줄임에도 이전에 직장을 다닐 때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상쾌하다.

교육원에 들어가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교육원의 커리큘럼이 6개월 동안 매일 (물론 주말은 빼고) 9시에서 6시까지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생활비도 모자란 상황에 나이는 서른이 다 되었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할애해서 훈련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막연한 불안함이 내 마음 속에 드리웠다. 고민은 찰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배우는데 피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20대 중반을 지나면서 콘텐츠 기획과 제작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형태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무엇이든 내가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전공(경영학)과 크게 연관이 없었음에도 에세이 전용 노트에 글을 썼고, 힙합 음악을 만들었고, 유튜브 콘텐츠용 동영상을 편집했다. 내 손에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보람찬 일이었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서 온전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영상 제작은 가장 흥미로운 분야였다.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가 결합된 영상은 내가 창작할 수 있는 것들이 결합한 최종보스 같은 것이었다. 영상 제작은 글쓰기와 닮은 점이 있다. 영상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언어를 기반으로 주제와 심상을 형성하는 것처럼, 영상 편집에서도 영상 언어들 – 구도, 앵글 등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심상을 형성할 수 있다. 음악과 비슷한 점도 있다. 음악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을 영상에서도 유사하게 전달할 수 있다. 영상 내에서 사운드는 동적 이미지와 결합하여 시청자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다.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상 제작에 큰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벌써 해당 교육 과정을 수강하게 된 지 1주일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흐르고 있다. 일과 자체는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간 기분인데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 이 프로그램에는 친구들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무한 경쟁 시스템과 그것을 대표하는 수능 같은 시험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냥 영상 제작과 관련된 일들을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고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체력이 10년 전과 달라서 이따금 잠이 쏟아질 때가 있긴 한데, 좋아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기에 억지로라도 버틸 힘이 생긴다. 좋아하는 일을 편안한 환경에서 배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빨리 다음 진도를 나갔으면, 혼자 되내이면서 귀가하는 2호선 열차에 몸을 싣는다.

하루아침에 삶이 바뀔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예’다. 최근 내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사실 겹겹이 쌓였던 원인들의 결과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뿐인데, 내 삶의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다행히 좋은 방향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다 보니 궤도가 긍정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계신 김봉현 작가님도 모 인터뷰에서 20여년 간 힙합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니까 했습니다. 20년 동안”

나는 이제 막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것 같다. 지금부터는 그것을 꾸준히 지속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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