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일본인들은 메이지 유신(1868) 이전까지 불교의 영향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기에 당대 서양인들보다 체구가 왜소했다. 당시 일본의 지도층은 서양인들의 우월한 체구에 열등감을 느끼며 육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서양인처럼 자국민이 커다란 신체를 가지는 것이 근대화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일본의 천황은 1872년 약 1000년 간 지속되었던 육식금지령을 해제했고, 일본 사회 내부에서 육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육류를 활용한 다양한 서양의 음식이 일본에 전해졌는데, 포크커틀릿(pork cutlet)도 그중에 하나였다. 포크커틀릿은 돼지고기를 밀가루 (또는 빵가루)에 묻혀 기름에 튀기거나 구운 음식으로, 평소 채식을 하던 일본인들에겐 생소한 음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생소한 음식이 일본의 국민 음식이 되는 계기가 있다. 때는 1929년, 도쿄의 한 요리사가 포크커틀릿을 일본식으로 개량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음식이 바로 돈카츠(豚カツ)이다.
일본의 돈카츠는 개성이 뚜렷한 음식이다. 두툼한 돼지 등심에 습식 빵가루와 계란물을 묻혀 튀긴다. 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돼지 등심은 손님 상으로 나가기 전 미리 썰어 놓는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편하도록 미리 돈카츠를 썰어서 접시에 담는 것이 돈카츠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썰어져 있는 돈카츠 옆으로는 채 썬 양배추를 두툼하게 쌓는다. 돈카츠가 느끼하게 느껴질 때, 이 양배추는 기름진 입안을 말끔히 정리해 준다. 마지막으로 흰쌀밥과 따끈한 미소된장국이 곁들여진다. 따끈한 밥과 돈카츠 한 점을 먹고, 된장국으로 속을 따뜻하게 달래주면 풍족한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결국 돈카츠는 3대 영양소(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를 한 번에 챙길 수 있으면서, 적당한 포만감을 안겨주는 작은 코스 요리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식 돈카츠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집이 성동구에 위치해 있다. 돈까스 전원(田元)이다.
돈까스 전원은 왕십리역과 상왕십리역 중간에 위치해 있다. 10인 정도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식당이었다. 최근 웨이팅하는 손님이 많다고 전해 들었는데, 평일 저녁 퇴근시간에 바로 방문해서 그런지 운이 좋았다. 나는 대기 순서 1번을 받았다. 매장 순환은 빨랐고 얼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매장은 부엌을 따라 테이블이 일자로 쭉 뻗어 있는 모습이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로 등심 돈카츠와 제로콜라를 주문했다. 이후 자리를 잡아 앉으니 직원 분이 내 테이블 위에 기본 상차림을 세팅해 주셨다. 생강초절임과 깍두기, 그리고 젓가락이 종이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에는 샐러드드레싱, 돈카츠 소스, 소금과 후추가 놓여 있었다. 이것을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작은 종지도 준비되어 있었다.
휴지가 들어 있는 통에는 친절하게 식사를 즐기는 방법을 적어 두셨다. 이런 작은 배려가 기대감을 키운다. 이렇게 센스 있는 식당의 돈카츠는 어떤 맛일까? 기대감으로 키워진 궁금증이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이윽고 등심 돈까스가 나왔다. 두툼한 등심을 습식 빵가루로 바삭하게 튀겨 내었다. 돈카츠 튀김옷의 바삭함이 눈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접시 한 편에는 양배추 샐러드가 두둑이 쌓여 있었다. 옆에 레몬 한쪽과 겨자가 곁들여져 나왔다.
등심 돈까스와 함께 흰쌀밥과 미소된장국이 나왔다. 흰쌀밥은 찰기보다는 된밥이었다. 미소된장국은 배추와 미역이 들어가 있었고, 특이하게 돼지고기가 숭덩숭덩 들어가 있었다.
함께 주문한 제로콜라는 펩시와 코카콜라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코카콜라 제로를 더 선호하기에 이것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펩시 제로는 감미료 맛이 너무 강해서 선호하지 않는다) 제로콜라를 시원하게 더욱 시원하게 음미하라고 얼음컵을 준비해 주셨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만족감을 키운다.
먼저 돈카츠 한 점을 집어 맛을 보았다. 적절한 온도에 적절한 시간 동안 튀겨졌다. 튀김옷은 바삭바삭했고, 등심은 촉촉했다. 고기에서 육즙이 흘러나왔고,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었다. 이후 소금에도 따로 찍어 먹어 보고, 돈카츠 소스를 뿌려 먹기도 하고, 겨자를 곁들여 먹어보기도 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돈카츠를 즐겼다. 이 중에서도 돈카츠 소스가 참 독특했는데, 녹진한 와인의 맛이 느껴지는 데미그라스 소스였다. 돈카츠 소스를 뿌려서 겨자를 약간 올려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이 돈카츠를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배추 샐러드는 레몬즙을 먼저 뿌리고 샐러드드레싱을 뿌려서 먹었다. 샐러드드레싱은 오리엔탈 드레싱이었는데 간장 베이스에 약간의 마늘이 곁들여진 것 같다. 감칠맛이 나는 드레싱이 채 썬 양배추와 조화를 이룬다. 돈카츠가 느끼하게 느껴질 때 이 샐러드를 입안 가득 채워 넣으면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드레싱이 입안의 생기를 돋워 주었다.
돈카츠 한 점, 양배추 샐러드, 흰쌀밥, 미소된장국, 그리고 반찬을 먹으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식사의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직원 분들의 따뜻한 배려에 훌륭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식사에 온전히 집중한 것이다. 마지막 돈카츠 한 점을 먹고, 제로 콜라로 입가심을 했다. 적당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완벽한 식사였다.
돈까스 전원은 성동구 일대에서 진정한 일본식 돈카츠를 맛볼 수 있는 가게이다. 큼직하고 촉촉한 등심 돈카츠와 완벽한 한 끼 식사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가게를 무조건 추천한다. 절대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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