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는 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준말입니다.
**국힙은 국내 힙합(또는 국내 힙합씬)의 준말로 힙합 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쇼미가 망했으니 국힙도 망했다.” 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관련 콘텐츠가 게시되어 있는 유튜브 댓글창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댓글인 것 같다. 심리학에서 인간은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했던가, 나도 몇몇 힙합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한국 힙합의 오래된 팬으로서 나는 몇몇 힙합 팬들이 주장하는 진술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나도 쇼미더머니와 국내 힙합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 힙합 팬들 사이에서 건전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고 국내 힙합씬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2019년 방영된 쇼미더머니8 이후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매년 쇼미의 방영이 끝날 때마다 “이번 시즌 쇼미 망했다”는 주장이 꾸준히 등장했다. 그 기점이 된 쇼미8은 음원 성적도 타 시즌에 비해 좋지 않았고,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도 다른 콘텐츠에 비해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인맥힙합’ 논란에 불을 지폈는데, 쇼미 참가자들 중 프류듀서(심사위원)와 지인인 경우에는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션에서 합격하는 모습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쇼미더머니8 이후 쇼미의 화제성은 점점 하락했고(물론 그 다음 시즌인 쇼미9는 흥행에 성공했기에 예외로 취급한다), 힙합 팬들은 ‘쇼미 망했다’를 밈(Meme)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매년 ‘이번 쇼미가 망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콘텐츠들이 힙합 커뮤니티에 도배되었다. 래퍼들이 대중가요 같은 랩만 해서 그랬다, 악마의 편집을 해서 그렇다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여기서 가장 설득력을 얻었던 논제는 ‘이제 쇼미의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과 쇼미더머니11과 관련된 논란이다.
먼저 쇼미더머니가 최근 들어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쇼미가 망했다”는 여론의 힘을 싣고 있다. 매 시즌 프로듀서가 어떻든, 참가자가 어떻든, 제작진이 어떻든, 힙합 팬들에게 쇼미 자체의 재미가 적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예로, 가장 최근에 방영한 쇼미11은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타 시즌에 비해 음원 성적에서도 저조함을 보였다. (쇼미11에 관한 다른 논란은 후술할 것이다)
래퍼 스윙스(Swings)는 한 인터뷰에서 최근 쇼미더머니가 재미없어진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인기가 있었던 쇼미더머니 시즌은 2, 3, 4, 9라고 언급하며, 이 때는 일종의 ‘*까(FU*K YOU)’가 존재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아이돌 래퍼와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경쟁 구도, 레이블 간의 경쟁 구도 등 다양한 경쟁 속에서 래퍼들은 각자 자신만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그러한 경쟁을 ‘조작’하고 있기에 재미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방송 전 참가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부터 제작진의 판단으로 참가자를 선별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발언은 쇼미더머니에 지원한 일반인 참가자들 대부분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시청자를 만나는 1차 미션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는 것이었다. 참가자가 많아지면서 방송에 출연할 참가자를 미리 선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처사였겠지만, 확실히 일반인 참가자의 출연 빈도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스윙스의 언급처럼 래퍼들 경쟁 속에서 부딪치는 각자의 멋이 없고, 신선한 일반인 참가자가 줄어든 쇼미더머니는 시청자들에게 매일 똑같은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남기게 한 것은 분명하다. 설상가상으로 11년간 방영을 하며 쇼미에 관한 대중의 피로감은 누적되었을 것이고, 쇼미의 재미도 이전 시즌들에 비해 점점 떨어졌을 것이다. 쇼미더머니의 재미가 예전보다 못하니 당연히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쇼미더머니11과 관련된 논란은 힙합 팬들이 쇼미 제작진의 역량에 의구심을 갖도록 했다. 이는 쇼미11 세 번째 미션인 ‘게릴라 비트 싸이퍼’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해당 미션은 44인의 생존자들이 랜덤으로 재생되는 비트에 맞춰 랩을 하는 일대일 경기였는데, 여기서 참가자 ‘이영지’는 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갑자기 그녀가 랩을 할 수 있도록 룰을 변경했고, 이영지는 여기서 엄청난 실력의 랩을 보여주며 다음 미션에 진출하게 된다.
해당 에피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며, 이전부터 제기되던 쇼미 제작진의 방송 제작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방송의 룰을 따르며 랩을 하고, 상대방과 일대일 경기를 치렀던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이영지는 탈락할 위기에서 혜택을 받아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것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이 있어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쇼미11 제작진은 이영지를 의도적으로 우승 시키기 위한 연출을 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래퍼 이영지는 종반부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밀어주기’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많은 악플을 받기도 했다. 본래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우승 후보자가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구도를 연출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경우는 뒷맛이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다른 참가자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치인 공정성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쇼미더머니가 망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쇼미는 여전히 국내 힙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쇼미더머니는 올림픽 같은 느낌이다.” 래퍼 박재범이 지난해 방영된 쇼미더머니11의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프로듀서로 참가하게 된 소회를 밝히며 직접 언급한 발언이다. 확실히 쇼미는 현재까지 11년의 시간 동안 국내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선봉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쇼미에 출연한 래퍼들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그들이 방송에서 발표한 음악은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라가기도 했다.
국힙 망하지 않았다 (3) - 쇼미더머니가 망할지라도 下 편으로 이어집니다.
'국내힙합 K-Hiph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이홉 j-hope - ‘on the street (with. J. Cole)’ 가사 해석 / 감상평 (1) | 2023.03.04 |
---|---|
국힙 망하지 않았다 (3) - 쇼미더머니가 망할지라도 下 (1) | 2023.02.22 |
국힙 망하지 않았다 (1) – VMC의 재구축이 보여준 것 (0) | 2023.02.07 |
된장찌개 먹고 힙합하면 안 되나요? (0) | 2023.02.01 |
1월 1일 11시 11분 (1) | 2023.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