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힙 망했다. 최근 힙합 커뮤니티를 보면 간간이 접하는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걸출한 국내 힙합 레이블들이 근래에 줄줄이 문을 닫았다.’라는 것이 주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2020년에는 일리네어 레코즈가, 2022년에는 하이라이트 레코즈가 회사를 청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VMC가 회사를 청산했다. 그러나 VMC는 이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2023년 1월 국내힙합씬에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VMC(Vismajor Company)가 회사를 청산하고 다시 크루(Vismajor Crew)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VMC의 수장 딥플로우(Deepflow)는 한 인터뷰에서 VMC 식구들에게 색다른 변화와 커리어가 필요할 때라고 느껴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를 기념하며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9th Wonder]과 동명의 공연은 ‘레이블’ VMC의 마침표였다.
VMC가 크루로 돌아간다는 안타까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앨범 [9th Wonder]을 듣고 있으면 여전히 VMC의 아티스트들은 건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특기는 여전했다. 규칙적인 드럼 사운드 위에 차곡히 쌓여가는 탄탄한 플로우와 그 사이에 박힌 깊이 있는 가사.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가사를 음미하게 되는 그들의 랩은 청자에게 랩이 어떻게 청각적인 재미를 선사하는지 여실히 알려준다.
VMC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레이블로서 마침표를 힙합 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으로 마무리했다. 그들은 지난 2월 6일 [9th Wonder] 공연을 개최했는데, 무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구장창 랩만 보여줬다는 후일담이 팬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자제하고, 자신들의 음악들로 셋리스트를 가득 채웠다. VMC는 힙합 팬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러한 VMC의 행보는 그동안 VMC를 좋아했던 팬들에게 확실한 보답이 되었다. 그들은 팬들에게 따분한 인사말로 감사를 전하는 것보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열정적인 방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VMC는 마치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그래도 우리의 모험은 계속된다!”라며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VMC의 아티스트들이 정중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힙합에 대해 일관된 태도로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결국 VMC의 경우를 봤을 때, 국내 힙합 레이블들이 해체한다고 해서 ‘국힙이 망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망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는 것’이다. 걸출한 국내 힙합 레이블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어도, 국내 힙합 아티스트들은 좋은 앨범을 내고 열정적인 공연을 하면서 여전히 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렇다. 아직 끝장나지 않은 것이다. 국힙은 망하지 않았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국힙 망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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