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는 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준말입니다.
**국힙은 국내 힙합(또는 국내 힙합씬)의 준말로 힙합 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국힙 망하지 않았다 (3) - 쇼미더머니가 망할지라도 上 편에서 이어집니다.

쇼미더머니는 대중들의 입에서 국내 래퍼들의 이름이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래퍼 비와이(BewhY)는 그가 일개 무명 래퍼였던 2015년, 쇼미더머니4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 방영한 쇼미더머니5에 다시 참가해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쇼미 우승 이후 비와이는 <무한도전>과 같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그의 인기는 팬들이 만든 ‘비와이 밈’이 그것을 증명했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비와이’나 ‘구찌가 만 원을 외치는 비와이’ 같은 밈이 그것이다)


그리고 쇼미더머니 방송 중에 제작된 프로듀서와 래퍼들의 단체 곡은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 음원차트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멜론차트를 기준으로, 특히 쇼미7에서 피에이치원(pH-1), 키드밀리(Kid Milli), 루피(Loopy)가 부른 ‘Good Day’와 쇼미9에서 미란이, 먼치맨, 쿤디판다(Khundi Panda), 머쉬베놈이 부른 ‘VVS’는 음원차트에서 6개월이 넘게 스트리밍 된 쇼미 단체 곡으로 발표되었다.
이렇게 쇼미더머니는 국내 래퍼들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확실히 2016년 비와이의 활약 이후 쇼미는 국내 힙합씬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그 비율은 점점 커져 갔다.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맛본 래퍼들이 많아지면서, 쇼미는 래퍼들이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등용문이 되었다. 그렇게 쇼미는 한국 래퍼라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된 것이다.
그래서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래퍼들도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 예를 들어 래퍼 루피(Loopy)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것이 미디어에 굴복하는 일이라 자신은 절대로 출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쇼미와 그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디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쇼미7에 출연했고 앞서 언급한 ‘Good Day’에 참여해 대박을 터뜨렸다. 루피의 쇼미 출연 이유는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해서’였다.

이것은 비단 루피만의 경우가 아니었다. 많은 래퍼들이 쇼미더머니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가 프로듀서나 참가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힙합 팬들은 항상 쇼미와 쇼미에 관련된 래퍼들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쇼미에 ‘출연하는’ 래퍼들에 대해서, 쇼미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결국 출연하게 되는’ 래퍼들에 대해서, 그리고 아예 쇼미에 ‘출연하지 않는’ 래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결국 쇼미더머니는 국내 힙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가 되었다. 국힙은 쇼미가 존재함으로 인해 신규 팬들의 유입을 보장 받을 수 있었고,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 국힙의 규모가 커지면서 쇼미는 새로운 래퍼들을 흡수하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순환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쇼미와 국힙은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이득을 취하며 공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에 들어 국내 힙합도 2010년대 중후반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 대표적인 예로 악뮤의 이찬혁이 쇼미더머니10 본선 무대에서 피처링으로 출연해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고 노래할 때, 대중들은 그의 가사에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 이찬혁의 가사가 또 다른 밈이 되어 국내 힙합씬을 조롱하는 상황에 활용된 것만 봐도 현재 국힙이 처한 사태와 대중들의 평가를 알 수 있다.

국내에서 한창 유행하던 힙합이라는 문화가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쇼미더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시기에 국힙마저 인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쇼미가 망했으니 국힙도 망했다.”는 진술이 등장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국내 힙합의 오래된 팬으로서 나는 이 진술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진술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싶다. 일전에 언급했듯이 쇼미더머니는 국내 힙합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국내 힙합씬에 관점에서는 쇼미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는 국내 힙합씬의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며, 이 프로그램은 대중을 상대로 하기에 국내 힙합에 대한 대중의 인기가 식으면 폐지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이다. 반면에 국내 힙합은 대한민국의 한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래퍼들과 콘텐츠 제작자들은 쇼미더머니에 의지하지 않고 국힙의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래퍼 수퍼비(SUPERBEE)는 자신만의 오디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그가 제작한 ‘수퍼비의 랩 학원(2019)’과 ‘드랍 더 비트(2022)’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이러한 콘텐츠는 ‘쇼미더머니 = 등용문’이라는 국내 힙합 공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국내 래퍼들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수퍼비의 랩 학원’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힙합 트리오 호미들(Homies)은 차세대 랩스타로서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또한 딩고 프리스타일(DF)과 같은 유튜브 채널에서 제작되는 힙합 콘텐츠들도 국내 힙합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DF는 유튜브의 특성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힙합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킬링벌스(Killing Verse)’와 같은 원테이크 랩 퍼포먼스 콘텐츠부터 예능 콘텐츠까지 다양한 포맷에 래퍼들을 출연시키며 DF는 국내 힙합씬의 다채로움을 만들고 있다. 또한 DF도 신인 래퍼들을 위한 ‘라이징 벌스(Rising Verse)’라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신예 발굴과 그들을 홍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
따라서 ‘쇼미가 망했으니 국힙도 망했다’라는 몇몇 힙합 팬들의 주장에는 반대 입장을 표하고 싶다. 결국 쇼미더머니는 국내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힙합 콘텐츠일 뿐이며, 충분히 대중의 인기가 사라지면 폐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쇼미 외에도 다양한 국내 힙합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쇼미가 망했으니 국힙이 망했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나의 작은 바람도 담겨 있다. ‘쇼미는 망해도 된다. 그러나 국힙은 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힙합이 나 같은 사람에겐 문화적 터전이자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래퍼 쿤디판다(Khundi Panda)는 자신의 크루 서리(30)와 함께 최근에 발매한 곡 ‘Writer’s Glock’에서 이러한 가사를 썼다.
힙합이 내 친구였다면 말해줬지 "멀리 왔어"
30(서리) - Writer's Glock 中
쿤디판다의 랩처럼 국내 힙합은 예전보다 어딘가로 멀리 왔을 뿐이다. 국내 힙합은 어떠한 문화적 현상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에 접어든 것이다. 쇼미더머니가 누군가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더라도, 국내 힙합은 여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 쇼미가 망할지라도, 국힙은 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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