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엘-플리키뱅 디스전 이전에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국내 언론에 자주 회자되는 래퍼가 있다. 대중들에게는 그의 음악적 성과와 별개로 그의 범죄경력과 한 국회의원의 아들로 더 잘 알려진 노엘(NO:EL)이다. 그는 작년 연말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으로 한국 래퍼들이 힙합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비난을 한 적이 있다.
너 같이 한국에서 된장찌개만 먹고 산 애들이 드릴하는 게 제일 역겨워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노엘은 작년 연말 엠넷(M.net)에서 방송된 <쇼미더머니11>에 출연한 래퍼 블라세(BLASE)에게 우회적인 디스(?)를 당했다. <쇼미더머니11> 출연진들끼리 팀을 나눠 서로에 대해 디스 랩을 하는 방송분에서 래퍼 블라세가 노엘과 본명이 같은 래퍼 신세인(XINSAYNE)에게 다음과 같은 식으로 디스를 한 것이다.
신세인이 본명은 용준이
이름부터 위험해 운전은 하지 말길
해당 방송에서 블라세는 힙합 팬들 사이에서 일종의 밈(meme)이 된 노엘의 음주운전 사건을 언급하며 노엘과 본명(용준)이 같은 신세인을 조롱하는 식의 디스를 했다. 블라세의 랩이 방송을 탄 이후, 신세인에 대한 디스랩보다 힙합 팬들 사이에서 노엘의 음주운전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의 범죄경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가 다시 형성된 것이다.
이에 노엘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블라세를 비난하는 글을 게시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릴(drill)을 하는 한국인 래퍼 블라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드릴은 근래 유행하는 힙합 음악의 한 장르로써, 래퍼 블라세가 주력으로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노엘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국내힙합을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나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정녕 한국 문화권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 드릴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더 나아가 한국인이 힙합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러나 바로 나는 ‘아니요’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힙합을 전 세계에 있는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한국인이 드릴을 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힙합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힙합은 음악의 한 장르이기보다는 일종의 문화다. 힙합은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해 이후 성공을 향한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의미가 확장했다. 특히 힙합의 핵심 키워드인 저항과 성공은 전 세계인이 공유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 속에서 자라든지 그에 저항을 하고 싶은 욕구와 지금 불우한 상황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힙합은 1970년대 후반 미국 내 억압받는 흑인 사회에서, 미국 사회에 저항하기 위한 행위들이 그 초석을 마련했다. 흑인들은 그들의 동네를 중심으로 파티를 개최했다. 파티를 하기에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여기서 DJ들은 힙합 음악을 틀었고, MC들은 랩을 했으며 비보이는 춤을 췄다. 사회에 대한 저항과 성장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이들이 만든 새로운 물결이 치는 순간이었다.
문화는 본래 전파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같은 문화권 내 다음 세대에게, 혹은 다른 문화권으로 전달되며 축적된다. 이러한 문화의 축적은 문화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하도록 돕는다. 힙합은 그렇게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더욱 다채로운 문화가 되었다. 한국힙합이 좋은 예시가 된다.
힙합은 1990년대 한국으로 전승되며 한국 힙합(또는 국내힙합)으로 변화했다. 한국 힙합은 특히 래퍼와 같은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들의 음악적 성과는 힙합을 국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써 자리 잡게 했다. 힙합은 BTS와 블랙핑크를 탄생시켰고, 우리는 음원 차트와 케이팝(K-pop)에서 여전히 힙합 음악을 찾아볼 수 있다. (뉴진스의 Ditto와 OMG를 들어보자. 반주가 힙합 그 자체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힙합은 국내 대중문화에서도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힙합 패션 스타일을 구축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몸소 허슬(Hustle)하는 삶을 실천하기도 한다. 홍대 근처에는 래퍼들이 모여 랩을 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 주변으로 많은 공연장이 생겼고 다양한 힙합 공연이 개최되었다. 온라인에서는 힙합플레이야, 힙합엘이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자리 잡았고 힙합 팬들은 이곳에 모여 자신들의 생각과 취향을 공유했다. 여타 젊은이들은 클럽이나 동아리 등의 모임을 통해서도 그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힙합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표, 혹은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음으로 드릴(drill)은 본래 미국 내 hood(가난한 동네)에서 거주하는 갱(gang)들의 폭력성이 기반이 된 장르이다. 미국 시카고 래퍼 Pac Man은 drill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음악에 사용했고, Chief Keef는 드릴 장르의 음악적인 기초를 만들었다. 당시 드릴은 시카고 드릴(Chicago Drill)이라고도 불리며 자신만의 개성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시카고 드릴은 영국으로도 전파되어 UK-Drill을 탄생시켰다. 영국의 드릴은 영국에서 유행하는 그라임(Grime)이라는 장르와 결합해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었다. 영국 특유의 둔탁하지만 매력적인 발음과 그라임의 빠르게 쪼개지는 박자감각이 한데 섞여 새로운 장르가 탄생된 것이다. 최근 영국 래퍼 Central Cee는 드릴 장르에 감성을 섞은 음악을 하며 UK-Drill도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앞서 힙합은 전 세계 어디든 전파될 수 있는 문화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이 UK-drill이 미국으로 역수입된 것이다. 미국으로 역수입된 UK-Drill은 브루클린의 래퍼 故 Pop Smoke와 만나 현재 유행하는 사운드의 드릴을 확립하게 되었다. 故 Pop Smoke는 비록 어린 나이(향년 2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드릴을 힙합의 대중적인 장르로 구축한 래퍼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래퍼들의 움직임은 드릴을 폭력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주변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음악으로, 혹은 새로운 유행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에서도 몇몇 래퍼들을 통해 드릴 음악이 국내에 자리 잡게 되었다. 창모는 'Swoosh Flow'라는 곡을 통해 한국 래퍼들도 Drill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블라세와 칠린호미(Chillin Homie), 칸(KHAN), NSW yoon, 폴로다레드(Polodared), 플리키 뱅(Fleaky Bang) 등 드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국내힙합씬에도 드릴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K-drill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언젠가 이러한 움직임이 케이팝처럼 드릴을 우리만의 힙합 장르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힙합 문화와 드릴 음악처럼 전 세계 사람들은 타국에서 태동한 문화를 함께 공유하며 즐길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한국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자란 사람이 드릴을 하면 역겹다는 래퍼 노엘의 주장은 그러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 사는 흑인들만이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대주의적인 발상 같기도 하다.
나도 힙합을 좋아해서 대학생일 때 흑인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고 여러 공연을 하기도 했다. 혼자 여러 작업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노선을 바꾸기도 했다. 1년 넘게 힙합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친구들과 다른 래퍼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들의 음원 발매 및 유통을 돕고, 그들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지역 힙합 공연을 기획하면서 새로운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현재는 일종의 휴식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힙합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것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리고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래퍼 드레이크(Drake)가 노래한 “Started from the bottom”을 삶의 모토 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힙합은 나에게 있어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다.
최근 노엘과 몇몇의 국내 래퍼들이 여러 논란을 만들면서 국내 힙합의 가치가 저해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불편한 댓글과 같은 반응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설령 그들이 래퍼나 프로듀서가 아닐지라도- 여전히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묵묵히 한국 힙합의 기둥이 되어 튼튼하게 이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봤을 때 나처럼 힙합을 통해 삶이 바뀐 사람들이 국내힙합 씬에 더욱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우리가 이 문화를 바른 방식으로 즐기고 공유하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준다면, 한국 힙합은 우리의 한 문화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된장찌개를 먹으면서도 힙합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한국 힙합은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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