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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을 딛고 일어선 염따의 네 번째 자서전, [살아숨셔 4] 리뷰

Gunn the Seeker 2025. 6. 1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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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따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 [살아숨셔 4]
 

약 3년 간의 잠적을 깨고 염따가 돌아왔다. 그는 5번째 정규앨범 <살아숨셔 4>를 리스너들에게 무심한 듯 툭, 던져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빠끄(비속어를 코믹하게 풀어낸 염따의 유행어)!'를 유쾌하게 외치며 화려하게 복귀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염따는 왠지 덤덤해보였다. 그는 앨범 발매 직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짧은 영상을 하나 업로드했는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웃통을 벗고 있는 염따가 자신의 앨범이 곧 발매될 것이라는 소식을 짧게 전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와꾸(얼굴)가 많이 갔네." 그래도 역시 염따는 염따다.

국내힙합 씬에서 커리어의 고저를 가장 다이내믹(dynamic)하게 경험한 아티스트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중에 1등이 있다면 단연 염따가 아닐까. 2006년에 데뷔하였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명시절을 거친 염따. 그러던 염따는 2019년, 갑자기 한국힙합의 트렌드세터(Trend Setter)가 되었다.

2016년에 처음 발매한 자신의 정규앨범 <살아숨셔>가 리스너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밈 문화가 확산되던 2010년대 말 염따는 자신의 캐릭터-플렉스를 즐기는 유쾌한 40대 아저씨 래퍼-를 밈으로 승화시키며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인지도를 넓혔다. 앨범과 밈, 염따의 두 가지 박자가 맞아떨어지던 해가 2019년이었다. 그는 유튜브 채널 '딩고 프리스타일(현재 DF)'을 만나 싱글 'Don't Call ME'를 발매하며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그가 주창한 'FLEX(소비를 통한 재력을 과시하는 슬랭)'는 본토 힙합 문화에서 사용되던 슬랭이었는데, 이 단어가 지상파 방송국에서 소개가 될 정도였다. 그는 한국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래퍼가 되었다.

염따의 전성기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이어졌다. 정규 앨범 <살아숨셔>의 3번째 작품인 <살아숨셔 3>가 발매되었고, 래퍼 더콰이엇과 함께 레이블 데이토나 레코즈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와 동갑내기 88년생 아티스트들인 딥플로우, 사이먼 도미닉, 더콰이엇, 팔로알토와 함께 딩고 프리스타일의 유튜브 콘텐츠 <둘도 없는 힙합 친구: 다모임>에 메인 출연자로 출연하며 리스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인기도 잠시였다. 염따는 <쇼미더머니 10>에서의 심사 방식 및 태도 논란, 직접 제작한 티셔츠 디자인 저작권 논란, 마미손과의 갈등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소위 '나락'에 떨어진 래퍼가 되었다. 실제로 당시 염따를 포털 검색창에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가 나락이었다. 염따는 그렇게 '나락간 래퍼'라는 이미지를 얻었고, 2022년 돌연 잠적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의 기반이었던 인터넷을 미련없이 떠났다.

그런 염따가 2025년 6월 12일, 다섯 번째 정규앨범 [살아숨셔 4]로 돌아왔다. 염따의 이번 앨범은 그간 연속적으로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했던 앨범 [살아숨셔]의 네 번째 작품이었기 때문에 리스너들에게 약간의 피로감을 줄 수도 있었다. 염따의 유튜브 채널에는 앨범 공개 전 더콰이엇과 함께한 [살아숨셔 4]의 리뷰 영상이 업로드되긴 했지만, 힙합 커뮤니티에서 이렇다할 큰 리액션이 오지는 않았다. 리스너들에게 염따는 이미지에 금이 간 래퍼였고, 이전보다 화제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이렇다할 앨범의 발매 프로모션은 없었고, 이전의 염따가 자주했던 요란한 마케팅도 없이 [살아숨셔 4]는 조용히 발매되었다.

[살아숨셔 4]는 발매되자마자 힙합 커뮤니티의 화제를 이끌었다. 리스너들은 저마다 염따와 신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솔직한 국내힙합 앨범은 오랜만이다.' '가사가 인상 깊었다.' 여러 호평들이 뒤따랐다. 염따는 이번 앨범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리스너들은 어떤 점에서 감흥을 얻은 것일까? 이제 본격적으로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https://youtu.be/fTg_DS2IpCU?si=sCP6Aii4AfbfKxNB

 

[살아숨셔 4]는 트랙리스트만 봐도 범상치 않다. 타이틀곡 중 하나가 절친이자 같은 레이블 대표인 더콰이엇의 이름을 딴 '더콰이엇'이다. 그밖에 '갓생', '윽!' 'IE러니!', 'ㄷ.R.E.A.M' 등 염따식 유머가 돋보이는 제목들이 눈에 띈다. 본래 래퍼는 워드플레이(Word Play)에 숙달되어 있어야 훌륭한 래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익살스러운 말장난에 능한 래퍼는 드물다. 염따는 리스너에게 피식 웃음을 줄 수 있는 특유의 유머가 있고 자신만의 독특한 작법이 있다. 그런 염따의 유쾌함이 트랙리스트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염따의 [살아숨셔] 시리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항상 1번 트랙은 염따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곡이고, 가장 마지막 트랙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담은 곡으로 채워진다. [살아숨셔 4]도 마찬가지의 규칙을 따른다.

첫 트랙 '갓생'은 염따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이다.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작업만 하고 있던 염따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이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아버지에게 위로와 칭찬을 받고 싶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힘든 삶이 자신에게 있어서 성장의 밑거름이 될 '갓생'은 아닐지. 아니면 내가 지금 갓생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설령 돌아가신 아버지라도)가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염따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담백한 곡이다.

또 난 힘드니까 당신을 찾지
우린 별로 대화 없는 사이였지만
눈앞에 있다면 난 당신 품 안에 와락
안겨서 뿌애앵 하고 싶어 ㅡㅜ
난 아무렇지 않은척했지만
두려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난 절대로 안 부러져 내 마음은 무적인 줄만 알았어

염따 - '갓생' 中

두 번째 트랙 '윽!'은 이런 염따의 자기성찰이 극단으로 치닫는 트랙이다.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염따는 참회를 한다. 자신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부끄러운 과거를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한 래퍼가 있을까 싶다. 그는 중학교 때 센 척을 하고 싶어서 친구들을 배신한 사연을 풀기도 하고, 앞서 언급했던 마미손과의 갈등에 피해를 입었던 황세현을 언급하며 황세현과 마미손에게 자신의 진심어린 사과를 전한다. '나는 센 척을 했다. 더콰이엇 옆에 있으니 나도 왕인 척을 했다.'고 염따는 솔직하게 말한다. 염따가 그간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트랙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다. 그간 자신이 센 척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 나열한 것이다. 그는 한창 인기를 구가할 때 피처링 페이로 4,000만 원을 받고, 빈지노의 맞팔로우를 받고, 이센스의 샤라웃(Shout out)을 받았다. 이것들은 염따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치환되며, 그가 남들 앞에서 센 척을 하게 되는 명분이 되었다. 이 파트에서 비트가 음산한 분위기로 전환되며 염따가 음침한 랩을 뱉는데, 무척이나 염따의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것이 특징이다. (듣는 이에 따라 약간의 소름이 돋을 수도 피식 웃음이 날 수도 있다.)

everybody 내게 박수를 짝짝
저작권이 1억을 넘었지 딸깍
다모임을 만들어서 팔았지
주인공은 늘 나야 하하
featuring 페이 4000을 받았어
이센스의 shout out을 받았어
빈지노의 맞팔을 받았어
댓글은 내가 너보다 많아 ㅋ

염따 - '윽!' 中

그리고 이어지는 이번 앨범의 정수 '더콰이엇'. 이 트랙에서 염따는 가감없이 더콰이엇이라는 아티스트를 소재로 자신의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배출한다. 자신과 동갑내기이지만 어느새 국내힙합 대부가 된 더콰이엇의 커리어, 그리고 더콰이엇을 따르는 후배 래퍼 - 창모, 릴러말즈를 언급한다. 염따는 사실 자신도 '더콰이엇'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더콰이엇이 먼저 염따에게 연락하여 그에게 다가왔을 때 그는 핑크빛 미래를 상상했다는 다소 귀여운 라인도 인상적이다. 언젠가 '일리네어 싸인즈 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 염따. 그는 더콰이엇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더콰이엇이 이룬 성공에 대해 자신도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https://youtu.be/38EJ1M25n4A?si=is5ekd3-uzjQtVUl

 

 

이후 이어지는 트랙 'IE러니'와 'ㄷ.R.E.A.M'에서는 추악하고 저열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염따의 일화가 소개된다. 자신의 열등감을 마주하며 자기 혐오가 심해진 염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을 지우기도 하고, 화장실에 갈 때 불을 켜지도 않았다. 그리고 동료 래퍼 뱃사공이 놀러왔을 때 금고의 문을 걸어잠궜다고 고백한다. 이전에 도둑을 맞은 경험이 있었지만 동료 래퍼들을 믿을 수도 없었다. 염따는 그렇게 세상과 점점 단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에게도 꿈이 있었나?' 염따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쿤타와 신인 시절 함께 했던 이야기까지 떠올리며 최근 쿤타에 은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형은 행복하게 잘 살아' 자신은 불행할지라도 쿤타의 행복을 빌어주며 염따는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다.

이후 코요태의 명곡 '순정'을 리메이크한 '순정(純情)2025'로 이어지며 앨범 분위기가 환기된다. 염따는 자신의 순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아니면 자신이 사랑하는 힙합이 될 수도, 혹은 염따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면 뭐하냐고, 정을 줘서 뭐하냐고, 순정을 받치면 고작 눈물 뿐인데. 염따는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슬픈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고, 코요태의 원곡을 빌려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숨셔 4]의 전반부가 끝난다. [살아숨셔 4]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하여 염따가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성찰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후반부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그간 염따가 추구하던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의 곡들로 전환된다.

잠수를 탔음에도 자신을 제외하고 잘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한탄하기도 하며('sWing'),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며 얻는 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Y-3'). 그리고 이어지는 9번 트랙 '그때 우리는'은 염따가 그간의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서보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는 희망찬 곡이다. 신인 시절 있었던 쿤타와 있었던 일화, 무한도전에 출연했었던 추억, 이센스의 앨범을 듣고 영감을 얻어 첫 앨범을 발매한 경험 등을 열거하며 그간 염따의 성찰은 희망찬 포부로 귀결된다. '널 다시 만나러 갈라고.'

그리고 피날레 '마'. 앞서 언급하였듯이 어머니를 위한 곡이다. 2년이 넘은 방황과 잠수를 끝내고 다시 일어선 염따가 오랜만에 어머니가 사는 집에 방문할 것이라고 하는 곡이다. 듣자마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생각나는 아련하고 구슬픈 멜로디가 특징이다. 염따는 어머니에게 '고마웠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다소 가벼운 분위기의 후반부 곡들이 마지막 트랙을 통해 다시 한 번 앨범이 무게감을 지닌다. 이렇게 염따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 [살아숨셔 4]는 그의 열등감을 마주하는 성찰의 과정을 지나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결국 염따의 [살아숨셔 4]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추악하고 저열한 감정-열등감을 직면하고, 그것을 성찰하면서 궁극적으로 내면을 성장시키는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앨범이었다. 또한 힙합이 추구하는 본질 'Keep it Real'을 충실히 구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간 염따의 서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리스너라면, 이 앨범이 단순한 복귀작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회복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명작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성장과 추락을 겪으며 방황하던 래퍼가 힙합을 통해 자기 자신을 회복하며 다시 한 번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 힙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클리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힙합 음악을 듣는다.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마음 속 작은 울림을 만든다.

힙합은 추락한 자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이다. 그것이 아티스트이든, 리스너이든 힙합은 누구에게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열등감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자기혐오에 빠져 있다면, 이번 염따의 앨범 [살아숨셔 4]를 통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보자는 용기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숨셔 4]는 그간 국내힙합 앨범 중 가장 진솔한 앨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그 진솔함 앞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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