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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힙합 K-Hiphop

제네 더 질라 - [94-24] 리뷰

Gunn the Seeker 2024. 11. 26. 23:17

https://youtu.be/bwaXLwlYVTc?si=AHw2_PuTJz3RG1BA

올해 국힙 최고의 앨범에 손꼽힐만한 수작이다

제네 더 질라가 돌아왔다. 벌써 다섯 번째 정규앨범이다. 국내힙합 대표 야망꾼, 돈색머리의 삼봉이가 인간 '이상용'으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의 30살을 기념하는 앨범 [94-24]이다.

제네 더 질라는 언더그라운드 시기부터 국내힙합을 대표하는 허슬러(Hustler)로 활동했다. 2019년 앰비션 뮤직과의 계약 이후 3장의 정규 앨범 발매, FLOCC 등의 크루 활동, 엠넷의 <쇼미더머니> 출연까지 그는 국내 유명 힙합 레이블을 등에 엎고 더욱 왕성히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야망을 추구할 것 같던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그 슬럼프를 이번 앨범 [94-24]에 꾹꾹 눌러 담았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앨범아트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8개의 트랩 비트 위에 직관적인 랩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각 트랙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Keep it Real'하게 리스너에게 풀어낸다. 특히 앨범의 전반부 트랙들인 'No easy', 'Life', '빛이 바랜 별' 그리고 '1500 (Feat. Double Down)'이 인상적이다.

'No easy'에서 제네 더 질라는 자신이 겪은 슬럼프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20대 때의 자신은 전혀 무서울 게 없었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쳐보니 자기 자신이 굉장히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고 그는 고백한다. 수입이 한창 좋을 때는 뭐라도 된 것 마냥 철없이 돈을 써버렸지만, 현재의 제네 더 질라는 그렇게 벌이가 좋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돈을 흥청망청 쓸 수 없었다. 그러면서 겁이 많아졌고, 생각이 많아졌고, 행동이 느려졌고, 결국 자신까지 늘어졌다. 결국 진짜 더러워진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시가 아니라 자신의 야망이었다.

바로 이어지는 트랙 'Life'에서 제네 더 질라는 슬럼프의 원인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레이블과의 계약도 원인이었다. 국내힙합 씬 내 최고의 입지를 보유한 앰비션 뮤직 소속 아티스트 계약은 그에게 돈이 아니라 독이 되었다. 제네 더 질라는 앰비션 뮤직과의 계약 이후 자신이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더 나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며 현재에 만족하는 삶. 야망꾼의 야망이 죽었다고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설마 너 영혼까지 팔았어?

앰비션 뮤직 아래에서 느꼈던 만족감은 더군다나 열등감의 씨앗이 되었다. 제네 더 질라는 '빛이 바랜 별'에서 자신이 섰던 공연, 축제, 행사 등은 자기 자신의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사실 회사가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같은 레이블 소속 타 아티스트들에 비해 스케줄이 줄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앰비션 뮤직의 아픈 손가락이 된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며 다른 랩스타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나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번다. 좌절의 냄새가 깊이 배었다. 그는 더 이상의 야망을 아니라, 눈앞에 재계약이 우선시하는 래퍼가 되었다.

'1500 (Feat. Double Down)'에서 그는 자신이 길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사실 내가 느꼈던 모든 슬럼프, 좌절감, 열등감이 다 돈 때문이었다는 것을. 반려묘의 병원비로 1,500만 원을 쓰면서 그는 인지부조화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벌이는 작아지고, 씀씀이는 커져 "통장의 불협화음"이 온 상태였는데 고양이 병원비로 큰 지출을 하니 일종의 허탈감이 찾아왔다. '나쁜 생각'도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완전히 돈 앞에서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그가 느꼈던 슬럼프의 근원에는 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 더 질라는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한다. 너를 살렸으니 된 거겠지. 그는 작은 생명을 살렸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돈이 자신을 힘들게 해도 결국 힘이 되는 것도 돈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슬럼프를 마주하고 극복할 힘을 얻었다. 벌이가 적어졌으면 더 벌면 되지. 좌절할 필요도,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어. 이제는 무조건 더 벌어야한다. 더럽혀졌던 나의 야망을 다시 채워야한다.

돈색을 자신만의 시그니처 컬러로, 나아가 일종의 상징처럼 보여줬던 한 래퍼가 돈 앞에서 좌절했던 경험에 대해 솔직한 감상을 랩으로 전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작아지고 래퍼들의 지갑이 얇아진 현재 국내힙합 씬에서 제네더 질라의 고백과도 같은 이번 [94-24]는 2024년에 발매된 가장 진솔한 앨범임에 틀림없다. 돈 앞에서 좌절과 무력을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돈 때문에 열등감을 느껴본 이들에게, 그리고 한국힙합에 이제 진솔함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을 추천한다. 우리도 야망을 다시 챙길 시간이다.

근데 행복하면 뭐해, 말로만 

나 자신에게부터 진실하겠어

다 털어내고 나니 후련하긴 해

너가 날 어떻게 볼지에 대해

걱정도 해봤지만 알빠노

You don't know about me, 하나도

- 제네 더 질라 '서울의 달'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zg5PEMC3qJo

앨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인터뷰를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