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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k_pop #국내힙합 #k_hiphop

국내힙합 K-Hiphop

떠그클럽 디스전부터 실리카겔 샘플링과 요아정 밈까지... 식케이X릴 모쉬핏의 클라이맥스, [K-FLIP] 리뷰

Gunn the Seeker 2025. 1. 14. 01:23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K-FLIP] 공식 스트리밍 비디오. 많은 래퍼들이 영상에 출연하여 얼굴을 비춘다.

식케이(Sik-K)의 앨범 단위 프로젝트 "FLIP" 시리즈가 세 번째 작품, [K-FLIP]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리즈에는 프로듀서 릴 모쉬핏(Lil Moshpit)이 함께 했다. 국내힙합 씬에 레이지(Rage) 장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K-레이지' 씬을 선도하고 있는 식케이와 맥시멀한 사운드의 '빡센 힙합' 트랙을 수준급으로 프로듀싱하는 릴 모쉬핏이 힘을 모았다. 앨범이 공개된 직후 힙합 커뮤니티는 앨범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2025년이 시작된 지 둘째 주부터 국내힙합 씬은 두 명의 힙합 아티스트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국내힙합 씬 대표 허슬러 식케이는 2023년 스윙스와 디스전을 치르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반면에 릴 모쉬핏이 누구인지 궁금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릴 모쉬핏은 프로듀싱 듀오 그루비룸(GroovyRoom)의 멤버 '휘민'의 부캐(Alter Ego; 또 다른 자아)이다.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 소속이었던 식케이와 그루비룸은 커리어 초창기부터 자주 협업하며 허슬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들의 브라더후드(힙합 씬 특유의 관계성)는 각자 다른 레이블(KC, AT AREA)의 수장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K-FLIP]이 화제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식케이의 새로운 디스전과 릴 모쉬핏의 참신한 샘플링 방식이 리스너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https://youtu.be/kzmJdd1-5O4?si=tJXjQ7PvatkuYNLc

'LALALA (Snitch Club)'의 뮤직비디오. 떠그클럽을 향한 날카로운 디스가 엿보인다.

식케이가 개막한 새로운 디스전은 앨범의 선공개곡 'LALALA (Snitch Club)'에서 시작되었다. 식케이는 해당 트랙에서 패션 브랜드 "떠그클럽(THUG CLUB)"을 'Snitch Club'이라고 일컬으며 강도 높게 디스했다. 여기서 떠그클럽의 대표 조영민에 대해서도 디스를 이어갔는데, 식케이는 조영민을 쥐(Rat; 힙합 문화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슬랭), 또는 'Snitch(스니치, 밀고자를 뜻하는 슬랭이며 Rat과 유의어)라고 하며 공격적인 라인을 뱉었다. 참고로 떠그클럽(대표-조영민, 권지율)은 힙합 문화를 기반으로 한 스트릿 브랜드로, 외국힙합 씬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Z세대 이하 연령대 소비자들에게 크게 주목받고 있는 브랜드다.

식케이가 모델로 협업을 진행한 떠그클럽 2022년 겨울 컬렉션

본래 식케이는 떠그클럽의 시즌 모델 및 콜라보레이션 제품 발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얼마 전까지 식케이와 떠그클럽 사단이 친분을 드러내며 함께 있는 모습을 SNS를 통해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최근 모종의 사건이 있어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수 없지만 가사에 있는 내용으로 유추해봤을 때, 식케이의 주장은 조영민이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을 밀고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디스전은 평소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대표 조영민의 명성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했고, 2023년 스윙스 디스전에 이은 식케이의 두 번째 공식 선전포고 트랙이 되었다. 이것은 식케이가 힙합 씬에 전달하는 도파민 그 자체였다.

'LALALA (Snitch Club)'에 이어 앨범 전곡이 발매 되었을 때, 힙합 리스너들은 선공개곡보다 더 자극적인 맛을 탐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앨범을 감상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앨범 전곡에서 익숙한 멜로디(혹은 반주)가 들릴 때마다 리스너들은 앨범 크레딧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레딧에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매 트랙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밴드 실리카겔(Silica Gel)과 칵스(THE KOXX), 래퍼 박재범과 더콰이엇, 그리고 포크 가수 김사월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이름 앞에는 원곡의 주인(Original sample from)으로부터 샘플 클리어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바로 릴 모쉬핏이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곡들을 전부 샘플링하여 새로운 힙합 곡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최근 릴 모쉬핏(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앨범 제작 비하인드에 대해 언급했다.

릴 모쉬핏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K-FLIP] 제작 비하인드에 대해 언급했다. 요약하자면 그가 음악을 하는 것에 있어서 흥미가 떨어져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 가요를 샘플링하여 곡을 만들었는데, 마침 식케이와 힙합 씬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에 작업해놓은 곡을 기반으로 합작 앨범을 만들자는 합의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게 이번 [K-FLIP]이 탄생했고, 릴 모쉬핏의 샘플링은 통달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식케이는 자신만의 강점-중독성 있는 랩 메이킹을 잘 살렸다. 이렇게 둘의 시너지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

앞서 언급한 'LALALA (Snitch Club)'는 국내힙합 씬 트랩의 아버지, 오케이션(Okasian)의 대표곡 'LALALA (Feat. Beenzino)'를 샘플링한 곡이었다. 여기서 릴 모쉬핏의 수준급 샘플링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약 10년 전 국내힙합 트랩 씬을 선도한 명곡을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편곡하여 최신 유행하는 레이지 힙합 트랙으로 재탄생시켰다. 레이지로 재탄생한 'LALALA (Snitch Club)'의 인스트루멘탈 위에 선배들을 향한 식케이의 리스펙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라 라 라'를 연이어 부르는 오케이션의 훅을 식케이만의 보컬로 재구성했고, 빈지노의 첫 번째 라인 "웃도리는 raf simmons"를 "웃도리는 Margiela, 떠그클럽은 절대 안 입어"로 오마쥬하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Eo4GatvE_Z/

 

또한 타이틀곡 'KC2 (Feat. JMIN, 김하온)'에서는 최근 숏폼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요아정 밈'의 주인공 인플루언서 천인학의 돌고래 소리 리액션을 샘플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의 뚜껑을 열고 '와' 소리를 지르는 한 청년의 목소리는 식케이의 레이블 KC의 외연 확장을 선언하는 곡의 인트로로 큰 역할을 했다. 숏폼 비디오 밈을 활용한 릴 모쉬핏의 센스는 재치가 있었고 더욱 젊은 세대 힙합 팬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PUBLIC ENEMY (Feat. 노윤하, Wuuslime)'에서는 칵스의 대표곡 'zeitgeist'와 더콰이엇의 대표곡 '2 Chainz & Rollies (feat. Dok2)'를 절묘하게 섞었다. 'zeitgiest'의 기타 리프에 더콰이엇의 추임새에 참여 래퍼들이 내뱉는 변칙적인 리듬의 랩이 더해져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킬링 트랙이 탄생했다. 락과 힙합,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래퍼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이 곡은 한국 힙합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힙합 씬에서 뱅어(Banger)라는 용어가 있다. 엄청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는 "빡센" 곡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번 [K-FLIP]을 통해 식케이와 릴 모쉬핏은 'K-뱅어'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가장 한국적인 곡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한국힙합 씬의 뱅어. K-뱅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함과 에너지, 그리고 유머가 이번 앨범에 전부 들어 있었다. 지금 한국힙합 씬 최전선으로 뻗어 나간 식케이와 릴 모쉬핏은 [K-FLIP]으로 다소 침체되어 있던 국내힙합의 외연을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