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이치원(pH-1)이 국내 힙합씬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랩으로 뱉었다. 투박한 로파이(Lo-fi) 비트 위에 담담히 써내려간 그의 벌스는 한 편의 편지와 같았다. 2분 57초라는 시간 동안 피에이치원은 그간 힙합씬에 있었던 몇 가지 화제를 언급했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지다’는 이찬혁의 발언부터 코미디언 힙합 듀오 맨스티어(Men’s Tear)의 등장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파트는 식케이(Sik-K)와 스윙스(Swings)의 디스전에 대해 소감을 밝힌 것이었다.
2023년 국내 힙합씬을 가장 뜨겁게 만든 두 래퍼가 있다면 바로 스윙스와 식케이였다. 두 래퍼는 같은 해에 각자의 레이블을 설립했는데, 공교롭게도 식케이가 먼저 스윙스를 디스하며 약간의 비프(beef; 다툼)가 있었다. 둘의 디스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랩 게임이 아니라 서로의 은밀한 내부 사정을 들춰내는 폭로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디스전을 통해 식케이와 스윙스는 약간의 화제성(hype)을 얻었지만, 이 사건은 힙합 커뮤니티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힙합씬의 화합이 깨지고 서로를 물어뜯는 형국이 도래했다.
when swings and my brother started beefing
(스윙스와 내 친구가 맞붙었을때)
내 마음엔 수백가지 복잡한 느낌이
pH-1 – Used To Be
피에이치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백가지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에게 식케이는 자신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형제였고, 스윙스는 국내 힙합씬에서 신세대를 대표하는 OG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세대 랩스타가 신세대에게 존경을 받는 OG를 디스하다니. 피에이치원의 복잡한 감정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들었네 모두가 알지 Sik, he my day 1 (식케이는 내 식구야)
started H1GHR MUSIC (하이어뮤직을 함께 시작했고),
서로가 많이 배워
you know i got his back when it came down to loyalty
(만에 하나 일이 생기면 난 당연히 그의 편인걸 알지)
pH-1 – Used To Be
식케이와 피에이치원은 데뷔 초부터 박재범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현재 국내 힙합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랩스타에 반열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를 가진 둘이었지만, 둘은 각자 다른 선택을 했다. 하지만 피에이치원은 그러한 식케이의 결정을 응원하고 항상 그의 편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리스펙트(respect)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이치원은 이어지는 라인에서 복잡한 감정의 근원을 끄집어낸다.
하지만 동시에 내 눈앞에 보여진
모습은 조롱받는 OG, i lowkey got sad
at the fact that no one gave him the credit for his legacy
(한명의 OG가 일궈놓은 길과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게 조금 슬펐어)
pH-1 – Used To Be
피에이치원은 둘의 디스전의 결과로 스윙스가 조롱받게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스윙스가 이뤄 놓은 유산 –펀치라인으로 대표되는 작사법과 씨잼, 저스디스와 같은 신예를 발굴한 것-은 한국 힙합의 거대한 줄기가 되었다. 하지만 디스전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갈라진 힙합 커뮤니티는 스윙스(심지어 식케이도)를 조롱하며 그의 모든 커리어를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피에이치원은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승자가 없는 싸움엔
아무도 돈을 내고싶지 않아해
but who am i to speak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할까)
일단 나부터 잘하고 변해야해
pH-1 – Used To Be
결국 피에이치원은 디스전이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승자가 없는 싸움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기꺼이 돈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일침이 흥미롭다. 하지만 피에이치원은 여기에 덧붙인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할까? 일단 나부터 잘하고 변해야 해. 서로를 물어 뜯는 힙합씬의 현재 세태 속에서도 나 자신만큼은 균형을 지키며 계속 허슬(hustle)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뚜렷하다. 그는 올바른 방향을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피에이치원의 ‘Used To Be’은 많은 리스너들의 귀감이 된다. ‘우리는 서로를 혐오하고 있고’, ‘누군가 넘어지기를 손을 모아 기도하는’ 피에치원의 다른 라인처럼 현재 힙합씬은 균형이 무너져 있다. 여기서 피에이치원은 우리에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균형을 지키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힙합씬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이며, 혼란스러운 형국을 해결할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물어뜯는 것을 잠시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한 래퍼처럼 균형 감각을 키울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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