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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Daily

함부로 도와주면 안 돼

Gunn the Seeker 2024. 3. 3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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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도와주지 마세요. 무슨 일 당할지 모르니까.”

누군가를 도와줬다가 회사 대표에게 들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느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회사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카페에 들렀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인 한 분이 카페에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노인은 모종의 이유로 몸의 힘이 풀려버린 것인지 바닥에 누운 채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곧바로 그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일어나보세요.” 내가 노인을 일으켜 세우는 그때 카페 직원이 나를 도와주었다. 노인의 체격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간신히 노인을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노인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회사 동료 한 명도 우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동료는 노인의 커피잔을 들어주고 있었다. 노인이 일어나면서 테이블을 넘어뜨려 커피를 쏟을 뻔했는데, 동료의 처신 덕분에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누군가를 돕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선생님 진짜 괜찮으시죠?” 카페 직원과 내가 동시에 물었다. 노인은 괜찮다고 제 갈 길 가라는 무언의 손짓을 했다. 그때 회사 대표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내게 귓속말을 했다. “함부로 도와주지 마세요. 무슨 일 당할지 모르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세상이 그렇잖아요. 남들 함부로 도와줬다가 피해 입는 사람도 있고. 솔직히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나는 그의 말에 “제가 저런(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잘 못 지나쳐서.”라고 대꾸했지만, 내 표정의 쓸쓸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대표는 나의 10년지기 대학 친구인데, 나는 평생 그가 친절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을 함부로 도와주지 말라니, 약간의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꼈다. 최근 사업을 시작하면서 너무 계산적인 사람으로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기에는 대표(내 친구)가 주변 지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사람이긴 하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지인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지인들을 돕는 것에 진심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발언의 원인을 사회 쪽으로 돌려야 하나?

정녕 한국 사회가 문제인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판단이다. 한국 사회는 현재 서로를 불신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11월 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2030세대의 약 절반인 46.8%가 한국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것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불신 정도였다. 딱 우리 또래가 겪고 있는 상황을 잘 나타낸 통계 지표이다.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서로를 불신하는 방향으로 변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면 명확히 떠오르는 원인이 없다. 개탄스럽다.

그러나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모르는데 우리는 서로를 항상 도우며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이유고, 인간이 유구한 역사를 만들 수 있었던 생존방식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신뢰하고 더욱 도와야 한다.

우리가 ‘남을 괜히 도와주면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는 고단한 삶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고단한 삶의 길의 초임에는 혼자 힘으로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존방식과 그것에서 오는 고독감이 기저에 깔린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고 싶다. 비록 내가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도움을 주다 보면 언젠가 한국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내게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 할 테지만, 상관없다. 나는 평생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우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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