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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Daily

새해인사

Gunn the Seeker 2024. 1. 3. 23:48

2023년 12월 31일이 2024년 1월 1일로 변하는 순간, 카카오톡 알림이 열심히 울렸다. 스마트폰 액정에는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여러 형태의 인사말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는 간단히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했고, 누군가는 짧은 글을 보내기도 했고, 누군가는 장문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폰의 잠금을 해제하니 몇몇 채팅방에 빨간색 숫자 딱지가 붙었다. 붉은 딱지가 탑처럼 쌓인 것을 보면서 내가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연락을 주고 받는 것보다 더 소중한 현재의 경험을 더욱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석촌호수 근처 한 술집에서 여자친구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최근에 와인에 흥미가 생겨서 (지나치게 비싸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값싸지는 않은)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서 2023년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다시 잠근 이후 내가 먼저 운을 띄었다. “예전에 나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나도 많이 변했다!”

이십 대 초반 인간관계에 서툴렀던 나는 새해의 자정이 지나면 최대한 빨리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새해 인사를 보내는 ‘센스 있는 친구’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만약 나보다 빨리 새해 인사를 보내는 친구(혹은 지인)이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답장(칼답)을 하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내 메시지에는 함정이 있었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OO아 새해 복 많이 받아”를 자아가 없는 로봇처럼 ‘복사, 붙여넣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진실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메시지였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휘발성이 강했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것 같은 나의 메시지는 친구들에게 낮이 되면 사라지는 아침 물안개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새해 연락을 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다른 몇몇은 다시 연락하기도 어려운 관계가 되었다. 이에 맞춰 나의 생각도 변했다. 굳이 새해 인사를 재빠르게 주고 받는다고 해서 내가 주변 친구들에게 ‘센스 있는 친구’라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통해 형성된 인간관계도 진실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올해의 시작은 예전처럼 강박에 사로잡혀 새해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현재를 즐겼고, 다음날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서 연락을 했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새해부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관계의 진실이 더해지는 시간이었다.

점점 새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적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혀 아쉽거나 불편하지 않다. 올해처럼 진솔하게 새해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좀 더 성숙해진 나를 마주하는 20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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