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상도집에 재방문했다. 경상도집은 내가 최근에 알게 된 맛집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을지로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마침 고향 대구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동네 친구가 서울에 방문하는데, 나는 이곳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이곳은 고향에서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상도집의 음식은 고향의 맛을 물씬 풍긴다. 고춧가루를 넣은 매콤한 콩나물국부터, 연탄불에 태우듯이 구운 돼지갈비는 내가 친구들과 고향 대구에서 먹던 음식들과 유사한 맛을 낸다. 친구도 이곳에서 음식을 먹더니 나의 의견에 곧바로 동의했다. "와! 서울에서 대구의 맛이 난다?" 친구의 반응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소주를 곁들여 마셨다. 소주는 우리 주변 분위기도 무르익게 만들었다.
해가 어스름 질 무렵, 경상도집 야외 테이블이 줄지어 있는 거리 위 가로등 불이 켜졌다. 그리고 우리 옆자리에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중년 부부가 앉았다. 그들은 어눌한 한국어로 주문을 했다. 사장님은 이들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중년 부부의 옆 테이블에 있는 한 젊은 여자 두 명에게 이들의 주문을 대신 받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젊은 여자 두 명은 친절히도 그들이 주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중년부부는 다행히 주문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화 사이에서 일본어가 드문드문 들렸다. 그들은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중년부부는 이윽고 맥주를 시켰다. 사장님은 카스와 테라 두 병을 들고 와서, 어느 쪽을 마실 것인지 고르라고 몸짓을 했다. 그들은 고민하더니 카스를 골랐다. 아내로 보이는 여인은 카스를 한 병 더 달라고 했고 그들은 두 병의 카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각자의 잔의 각자의 맥주를 따르고, 돼지갈비와 함께 먹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작은 담소를 나누었다. 무척이나 행복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친구와 식사를 계속했다. 우리는 그동안 있었던 회포를 풀었고,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했다. 또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친구와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옆에 중년부부가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맥주를 더 마시고 싶은데 주문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곳은 첫 주문 시에만 술을 직접 주문하고, 이후에는 냉장고에서 마시고 싶은 주류를 가지고 와서 마시면 되는데, 이 부분을 일본인 관광객이 알 수 있을 리가.
"저기 일본인이세요?(あの日本人ですか。)"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 내가 먼저 용기 있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일본인 관광객입니다.(はい、日本人観光客です。)" 그들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맥주를 어디서 가지고 올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직접 맥주를 가져올 수 있는 냉장고로 안내했다. 그들은 이번에 테라를 마셔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테라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연신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렇게 중년 부부는 우리와 말꼬를 트게 되었다. 중년부부는 우리에게 혹시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어느 정도 일본어로 소통할 줄 알아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우리는 한두 번 일본에 여행 간 것이 전부고, 유학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친구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그래도 그 중년부부는 일본어를 너무 잘한다고 우리 둘을 칭찬했다. 이게 일본식 칭찬인가. 어딘가 어색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들의 칭찬에 힘입어 나는 켈리라는 맥주를 추천해 주었다. 이번에 하이트진로에서 새로 발매한 맥주인데, 친구가 이것이 테라나 카스보다는 훨씬 맛이 좋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 앞에서 굿(good)이라고 덧붙였다. 중년부부는 우리에게 맥주를 추천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분이 냉장고에서 켈리를 가지고 왔다. 그들은 이제 네 번째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눈웃음을 보내고 각자만의 대화에 집중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볼일을 본 이후 바로 자리에 돌아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친구가 붉은 얼굴 위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중년 부부가 켈리를 한 병 더 주문해서 그 맥주를 친구의 잔에 나눠준 것이다. 친구는 중년부부와 건배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내분이 한국 드라마에서 '건배'하는 것을 봤다고 말하며 '건배'라고 먼저 운을 떼자, 친구는 건배를 할 때 요즘 친구들은 '짠'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나에게 자랑을 했다.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기애애해서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아내분이 나에게도 맥주를 따라주셨다. 남편분은 감사의 표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감사히 그 잔을 받고 친구와 함께 중년 부부와 '짠'을 했다. 서로의 잔을 비운 이후 나는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다. 그들은 홋카이도에서 왔다고 답했다. 홋카이도는 친구와 내가 함께 여행 가보고 싶었던 지방 중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거기까지 대화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내분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셨다.
아내분은 자신의 넷플릭스 계정을 보여주며, 자신이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고 어떤 한국 드라마를 감상했는지 보여줬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비교적 최근 작품인 <퀸메이커>까지 그녀는 유명 한국 드라마를 섭렵하고 있었다. 나는 <이태원 클라쓰>에 출연한 배우 박서준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사랑의 불시착>을 가장 인상 깊게 감상했고 그중에서도 배우 현빈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십 대였던 시절에만 해도 친구들과 일본 드라마를 감상했는데, 시간이 흘러 일본 사람이 한국 드라마를 감상한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마침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이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하이트진로에서 만든 테라 맥주 병따개였다. 사장님은 무심히 이것을 일본 관광객에게 나누어주었다. 중년 부부는 내게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맥주 병따개라고 전달하며, 사장님이 일본인 관광객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이 작은 선물에도 감동했다. 사장님에게도 감사하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다.
중년 부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있던 사장님은 내게 물었다. "여기를 어떻게 찾아왔대? 한 번 물어봐 봐." 나는 파파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질문을 했다. "이 식당에 어떻게 오셨어요?" 아내분은 활기찬 모습으로 답변했다. "인스타그램 보고 왔어요!" 나는 이 말을 약간 부풀려서 사장님에게 전달했다 ."사장님 SNS 보고 오셨대요. 여기가 맛집이라서 일본에서도 유명하답니다." 남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나의 특기다. 사장님은 씩 웃으시더니 나에게도 맥주 병따개를 나눠주셨다. 통역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호의는 호의를 낳는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마무리되었다. 중년 부부는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며 계산을 했다. 계산을 하고 난 이후 우리 자리에 찾아와 인사를 했다. 우리도 반가웠다고 인사하며 그들에게 정중히 묵례를 했다. 그들은 기분 좋은 듯이 자리를 떠났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기분 좋게 다시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옆에 또 일본인 관광객이 앉았다. 이번엔 젊은 여자 두 명이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는데 이번에도 사장님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사장님이 직접 맥주를 두 병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카스와 테라를 들고 어떤 걸 원하냐는 그의 몸짓에 그녀들은 당황했다. 무엇을 마셔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친구와 나는 이번에도 도움을 주었다. 사장님이 들고 있는 카스와 테라 중에서는 테라가 맛있어요. 그런데 냉장고에 들어 있는 켈리가 제일 맛있을 거예요. 켈리를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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