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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Daily

SNS 비활성화

Gunn the Seeker 2023. 5. 10. 23:12

얼마 전에 SNS(Social Media)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자주 사용했던 인스타그램과 최근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페이스북 계정까지 모든 계정을 비활성화했고,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지웠다. PC버전 크롬 브라우저 위에 설치 되어 있던 SNS 관련 북마크도 없애 버렸다. 내가 절대 접촉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게 다 인스타그램(Instagram)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먼저 인스타그램과 나는 애증의 관계임을 밝힌다. 나는 본래 인스타그램을 싫어했다. 고등학생일 때 인스타그램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사람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에 집중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하면 내 인생이 위험해질 것 같다. 본능적으로 이렇게 느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내 20대 초반 어려웠던 연애 때문에 나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매일 음울한 하루를 보냈다. 그녀와의 연락은 두절되었지만, 인스타그램 맞팔(서로 팔로우를 해서 상대방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을 유지했기에 그녀의 소식을 엿볼 수 있었고 심지어 그녀에게 내 근황을 알릴 수 있었다. 그녀의 소식을 보며 나도 잘 살고 있다고 어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게시물 올리는 법과 스토리 올리는 법을 공부하고 매일 하나씩 올리며 스스로 학습했다. 나도 잘 살고 있어!

시간이 지나며 전 여자친구를 자연스럽게 언팔(팔로우를 취소하는 행위)하게 되었다. 그녀가 그동안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이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나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써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다른 목적으로 빠져 들었다. 내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나의 허영심을 채우자!

애초에 인스타그램은 Instant(즉시, 긴급한)Telegram(전보, 전송)라는 영단어를 조합하여 탄생했는데, 인스타그램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내가 찍은 사진을 즉시 나의 팔로워에게 전송하며 소통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은 사용자(User) 간의 연결을 높여 각자의 의사소통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나의 허영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있다. 자신의 장점을 인정받고, 칭찬(또는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심리적인 욕구를 인정 욕구라고 한다. 인간의 생존력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받는 인정을 통해 강화된다.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함은 성장의 동기로 작용하며 인간을 더욱 진일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 인정 욕구도 과하게 발현되면 인간을 피곤하게 한다. 자신은 무조건 인정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앞선 연애로 인해 나도 타인에 대한 인정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자리 잡은 것인데, 인스타그램은 나의 인정 욕구를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환원했다. 인스타그램은 게시물을 업로드하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좋아요(♥)댓글,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 DM) 등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인정 욕구를 더욱 자극한다. 나도 그렇게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자극을 받았다. 내 게시물을 올리니까 친구들이 반응해주는구나! 게시물을 더 올려야겠다. 그리고 친구들의 좋아요를 더 받아야지. 댓글 수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DM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이 나의 내면에 있던 드러내고 싶은 심리와 그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내 일상을 인스타그램 스토리(24시간 동안만 팔로워들에게 노출되는 게시물)로 올리고, 피드(feed; SNS에서 내 계정의 화면)를 정방형 사진으로 채웠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면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요즘 친구들은 DM을 통해서 연락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서로를 태그하면서 소통을 했다. 나도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이후에 내 계정을 되돌아보니 피드에 올린 게시물이 부끄러웠다. 피드에 있던 사진은 전부 삭제했지만, 스토리는 계속해서 올려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토리는 24시간 내에 친구들 피드에서 삭제되는 휘발적인 게시물이었으니까. 부끄러움이 덜했고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책임감도 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업로드하는 것이 매우 쉬웠다! 둘째,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기 싫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더욱 돈독해진 친구들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소통하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싶었다.

약 4년에 걸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다양한 것을 업로드했다. 나의 대학 생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했던 경험, 친구들과 술을 먹고 추억을 쌓았던 경험, 여행, 대외활동, 영상 제작, 그리고 새롭게 만난 여자친구와의 연애 등을 업로드했다. 그러다 문득 작년 연말부터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지? 휘발성으로 날아갈 콘텐츠를 내가 굳이 고생해서 업로드할 필요가 있나? 이건 허세 부리기 위한 행위가 아닌가?

인스타그램에 내 생각과 일상이 매몰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시작했던 것인데, 어느새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나 자신을 마주한 것이다. 주객전도다. 심지어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스토리에 무엇을 올릴지 집착하는 나 자신를 바라볼 때면 일종의 죄책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내가 이럴려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인가?

심지어 내가 스토리를 못 올릴 때면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보며 자신을 깎아 내리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좋은 회사에 취업했네.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었네. 애인과 행복한 데이트를 했네.' 이렇게 다른 이들의 게시물을 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뭐했지?" 사람의 인생은 다양한 것인데, 인스타그램에 올라 오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며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이것에 환멸을 느꼈다.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밤하늘 별 아래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본 시인 윤동주처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나는 이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었지.' 글을 찬찬히 쓰며 자연스럽게 내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정말 부끄럽다는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어딘가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 부끄러움의 근원은 어디 있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나의 이면에 있던 진실을 감추고, 표면에 있던 것만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확실했다. 또한 남들의 게시물을 보고 그들은 쉽게 판단하고 나와 비교했다. 여러 부분이 부끄러웠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근데 내가 "보여주는 삶"을 정직하게 이행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껍데기만 남은 삶이다. 인스타그램에 허세 부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껍데기로 살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내가 막상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일종의 허탈함이 밀려왔다. 나도 내가 욕하던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다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삶을 살아야지.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김건준은 그러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인스타그램을 등지고 다시 더욱 성장하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하게 되면 내 계정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사라진다. 서버에 데이터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된다. 언제든 다시 로그인하면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할 수 있다. 탈퇴를 할 수도 있었으나, 내가 언젠가 더욱 성장해서 돌아올 때가 있지 않을까? 라는 미련이 생겨서 탈퇴를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분간 인스타그램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내 생각이, 사상이, 그리고 가치관이 진일보한 것이다.

벌써 SNS를 비활성화한 지 2주가 흘렀다. 2주 동안의 변화가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니 나 자신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짧은 시간 내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예를 들면 숏폼 영상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더욱 큰 고점을 향해 올라갈 것이다. 내 껍데기는 다시 균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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