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국내 어린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지만, 나도 어린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린이날이 되면 괜스레 어릴 때 좋아했던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음식은 돈가스이다.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함께 먹은 돈가스는 나에게 여전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돈가스와 관련된, 그러나 감상에 젖게 되는 추억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시절 4살 터울의 형과 돈가스를 배달시켜 먹었을 때이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바쁜 나날을 보내셨다. 그래서 나는 형과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많았다. 우리 형제는 세수대야동까스라고 불리는 식당에 전화를 걸어 돈가스를 배달시켰다. (세수대야동까스는 2000년대 초반 대구·경북 지역에 있던 돈가스 전문 프랜차이즈이다. 현재는 영업하지 않는다.)
이 식당은 정말 세숫대야 크기만 한 큰 접시 위에 얇게 편 경양식 돈가스와 양배추 콘 샐러드, 밥, 테이터 탓즈(Tater Tots; 테이터 펍스, 알감자라고도 불림) 등을 얹어서 손님 상 위로 내었다. 심지어 중국집처럼 배달을 했는데, 철가방에 그 세숫대야 크기의 접시를 보관해서 사장님이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다. 그래서 따뜻한 돈가스를 집에서도 맛볼 수 있었다.
형과 나는 돈가스를 먹으며 돈가스라는 음식이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과 머릿속에 아로새긴 것이다. 형과 세수대야동까스를 먹으며 부모님을 기다렸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소소하면서도 행복한 잔상을 남긴다. 그렇게 돈가스는 나의 최애 음식이 되었고,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찾아왔다. 연휴이기에 초등학교 동창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와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다가 우리는 돈가스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돈가스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친구도 나처럼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국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돈가스를 맛보기로 했다.
친구는 나에게 혹시 압구정로데오 근처 돈가스 맛집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돈가스를 좋아함에도, 압구정 로데오에 돈가스 맛집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친구는 서울 사람이라면 이곳을 무조건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식도락가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가게이고, 최강의 일식 돈가스를 판매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은 압구정 로데오에 있는 카츠바이콘반이다.
https://place.map.kakao.com/1480354584
카츠바이콘반
서울 강남구 선릉로153길 36 1층 (신사동 647-22)
place.map.kakao.com
카츠바이콘반은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10분 거리, 도산공원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이름을 보니 콘반이라는 식당에서 운영하는 돈가스 전문점으로 보인다. 참고로 콘반은 장안동에 위치한 일식 전문점이다. 돈가스와 술을 판매하는 곳이다. 콘반은 다음에 한 번 방문할 예정이다.
다시 리뷰로 돌아와서, 오픈 시간(오전 11:30) 전에 우리는 캐치 테이블로 예약을 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40분 정도였는데 우리를 끝으로 만석이 되었다. 주방은 개방되어 있었고 매우 쾌적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직원분들도 친절했고, 벌써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서 앉은 자리는 바 테이블이었다. 다른 테이블에 자리가 다 차 있었기 때문에 바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바 테이블도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다. 기본 상차림은 정말 별게 없었다. 돈가스 소스와 샐러드드레싱, 소금이 전부였다. 접시, 물컵, 젓가락은 셀프로 가져다 쓰면 되고, 직원분께서 마실 물을 갖다주셨다.
우리는 캐치테이블 앱에서 미리 주문을 했는데, 나는 로스카츠(등심돈카츠)와 한입카레를 시켰다. 개인적으로 히레카츠(안심돈카츠)를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일본 경양식의 근본 조합을 맛보고 싶었다. 로스카츠와 카레는 역시 일본 경양식의 대표주자들이 아니던가. 매콤하면서 녹진한 일본식 카레와 두툼하고 바삭한 등심 돈가스는 마치 천생연분처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주문한 음식은 곧바로 준비되어 상으로 올라왔다. 로스카츠와 흰쌀밥, 미소된장국, 양배추 샐러드, 한입카레가 올라왔다.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는 완벽한 한 끼 식사. 앞서 작성한 돈가스 전원(#4)의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돈가스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음식이 아닐까.
로스카츠는 6조각이었다. 돈가스 6조각에 15,000원이라니! 약간 가격이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현재 물가가 어찌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만 좋으면 됐지! 돈가스의 튀긴 단면을 보니 이 정도의 가치를 하는 음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기가 분홍빛을 띠었다. 누군가는 덜 익은 고기라 말하겠지만, 이것은 사실 돈가스 맛을 결정하는 몇 가지 조건을 완수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첫 번째는 등심이 신선하다는 것이다. 신선한 육류에 있는 분홍빛 미오글로빈 함량이 높으면, 고기를 충분히 익혀도 이러한 색의 육질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신선한 고기를 저온에 튀긴 이후 잔열로 익히면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육즙을 최대한으로 보존할 수 있다. 이 로스카츠는 두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
로스카츠를 맛보았다. 간이 짭쪼롬하게 되어 있었고, 바삭한 튀김옷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육질이 다양한 맛의 하모니를 구성했다. 특히 등심의 지방 부위는 입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을 내었다. 한 조각을 다 먹고 나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여기 진짜다.
그러고 나서 미소된장국에 손이 갔다. 미소된장국이 독특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파와 양배추, 그리고 돼지고기(삼겹살)를 태우듯이 볶은 후에 물을 넣어 끓인 것처럼 보였다. 건더기에 마이아르 반응(Mailard Reaction; 고기의 단백질이 고온 조리될 때 당과 결합해 겉이 그을리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소된장이 다소 적게 들어가 있어서 국물이 상대적으로 탁하지 않고 맑았다.
맛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돈코츠라멘 육수가 진한 맛이 아니라 은은한 맛을 내는 버전이 아닐까?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특이하게 국물이 돈가스보다 싱거웠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말끔히 입 안을 정리할 수 있었고, 식사를 하는 도중에 맛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후 한입카레를 맛보았다. 일본식 숙성 카레에 양파가 들어가 있었다. 다른 속 재료는 어떠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 동안 조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레 위에는 텐카스(튀김 부산물)이 올라가 있었다. 아마 돈가스를 튀기고 난 이후 남은 부산물일 것이다.
카레는 정직한 맛을 냈다. 매콤하면서 녹진한 맛. 캐러멜라이징 된 양파를 베이스로 일본 카레 특유의 향신료 맛이 느껴졌다. 일본 카레를 즐기는 이에게는 익숙한 맛이다. 흰쌀밥과 함께 먹어도 좋고, 돈가스를 찍어 먹어도 좋다.
양배추 샐러드는 평범한 샐러드였고, 드레싱도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만든 평범한 맛이었다. 독특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돈가스 소스는 달랐다. 레드와인을 첨가한 진짜 데미그라스 소스였다. 레드 와인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고기와 채소를 기반으로 만든 육수가 적절하게 섞여 독특한 감칠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로스카츠와 함께 먹기 매우 적절한 조합이다. (시판 소스라면 할 말이 없다...^^*)
식사를 끝냈다. 로스카츠를 먹으며 어린 시절 먹었던 돈가스가 자꾸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경양식 돈가스를 먹었는데, 성인이 되어 일본식 로스카츠를 먹고 있다니. 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라는 생각부터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데, 직원분이 아사히의 미츠야 사이다 캔디를 주셨다. 입가심을 하라고 나눠주신 것이다. 사이다의 탄산과 특유의 단맛이 느껴지는 사탕이었다. 마치 식사를 마치면 야구루트를 서비스로 나눠주시는 제육볶음 집 사장님의 선택처럼, 사이다 캔디는 완벽한 마무리가 방점을 찍었다.
일본식 돈가스를 좋아한다면, 아니면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돈가스를 좋아했다면 이 집 카츠바이콘반을 적극 추천한다. 예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줄 맛집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사이다 캔디도 꼭 챙겨 먹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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