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S ARCHIVE 자세히보기
About Korean Pop Culture

#케이팝 #k_pop #국내힙합 #k_hiphop

에세이 Essay

나의 시세(時勢)

Gunn the Seeker 2023. 3. 1. 15:42

“그래서 연봉은 얼마야?” 요즘 들어 친구들이 자주 꺼내는 화두이다. 기성세대에서는 충분히 예의 없게 느낄 수 있는 질문임에도 친구들은 이 질문을 누가 먼저 하든지 상관없이 곧잘 대답해준다. 친구들이 분위기를 험상궂게 만들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이 아직 우리가 이십대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십대 후반이 되자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그들은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친구들의 직장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직장 상사 이야기, 회사에서 실수를 한 이야기 등 친구들의 에피소드는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옴니버스 작품이 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바로 ‘연봉’이다.

얼마 전에 대학교 같은 학부 동기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해 4명이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식사 시간 동안은 P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P는 작년 여름에 1년 간 다닌 회사를 퇴사했고, 현재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 한 AI 기술개발 회사에 최종 합격을 했는데, 놀랍게도 출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연봉을 저번 회사보다 터무니없이 적게 부르잖아.” 이게 그 이유였다.

친구들과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 P가 제안 받은 연봉에 대해 생각했다. 약 3천만 원 중반의 돈. 취업준비와 프리랜서를 병행하며 수입을 얻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큰 액수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잠겼다. 만약 그 회사에 내가 합격했다면 나는 얼마의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취업 시장에서 나의 시세는 얼마일까?

최근에 나의 수입을 생각해봤다.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던 제작사와 연락이 닿아 작년 하반기에 의정부시청에서 주최하는 힙합 공연을 기획하고 수입을 얻었다. 내 업무는 아티스트 섭외 및 셋리스트 기획, 그리고 공연 현장 관리였다. 수입은 약 95만 원. 2주 정도 일을 했는데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친구들의 업무 강도와 비교하니 만족해도 되는 정도의 액수였다. 그래서 대충 만족하고 잊고 지냈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가상 연봉을 계산해보자. 2주 간 공연 기획을 했지만 실제 노동에 들인 시간은 그것의 절반 정도였다. 그래서 노동 시간을 1주일로 가정을 하고, 내가 1주일에 95만 원을 벌었으니까 월급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380만 원인가? 그렇다면 연봉은 4,560만 원? 친구 P가 언급했던 3천만 원 중반의 돈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다. 내가 그만큼 많이 받았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나의 시세는 지속성과 세금, 실제 근무시간 등 여러 문제를 제외하고 계산한 것이기에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츠렸던 나의 몸통을 펴는 데 도움이 되는 셈이었다. 친구들이 연봉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내가 서 있는 바닥과 친구들의 바닥을 비교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나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연봉이 몇 천만 원대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심 그들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산을 해보니 나의 노동의 가치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은 크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 내에서 월급을 받는 자’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급여를 받는 자’의 바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평행선처럼 단지 접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집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의 시세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친구들의 연봉과 비교하며 무의식적으로 후려치던 나의 가치는 깎아내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관점이 바뀐 덕분에 은연 중에 내재되어 있던 열등감이 사라지고, 단단한 자존감이 자리 잡았다. 나의 시세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에세이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현이 전부다  (0) 2024.03.31
프라모델과 나  (3) 2023.06.09
포르쉐는 나의 꿈이다  (2) 2023.04.10
허무주의와의 고군분투  (1) 2023.03.18
카프카의 삶  (0)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