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S ARCHIVE 자세히보기
About Korean Pop Culture

#케이팝 #k_pop #국내힙합 #k_hiphop

국내힙합 K-Hiphop

맨스티어에 대한 감상

Gunn the Seeker 2024. 3. 31. 01:29
맨스티어 - AK47 M/V

최근 힙합 듀오 맨스티어(Men’s Tear)가 공개한 음원 ‘AK47’과 그 뮤직비디오가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서 화제이다. 맨스티어의 ‘AK47’는 국내 음원차트에서 100위권 안에 진입하였으며 빈지노, 정상수와 같은 래퍼들의 샤라웃(Shout-out)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AK47’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이 글을 작성하는 기준 500만 회를 돌파했다. 맨스티어가 국내 힙합씬의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맨스티어는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 소속의 코미디언 최제우, 전경민이 래퍼로 활동할 때 사용하는 활동명이자 일종의 개그 캐릭터(부캐)이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 ‘뷰티풀너드’에서 맨스티어를 주연으로 하는 콩트 형식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였는데, 힙합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래퍼 지망생의 초라한 현실을 콘텐츠로 보여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여기서 맨스티어는 단순히 콩트 영상만 유튜브에 업로드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작곡을 공개하며 래퍼들의 랩 스킬과 작사법마저 패러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AK47’은 맨스티어 유튜브 콘텐츠의 연장선으로 등장한 자작곡이었다. 미국 본토 힙합에서 접할 수 있는 폭력성이 가득한 가사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장난 개그가 잘 섞여 있는 훅(Hook; 후렴구)은 한 번 듣는 이도 피식 웃음짓게 하며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우리 동네는 밤마다 울려 총성

Why you scared? 잘 봐봐 난 이렇게 컸어

AK47 맞고 사망한 외할머니

그 말대로 악소리 47번 외치셨지

맨스티어(Men’s Tear) – ‘AK47’ 가사 중

맨스티어의 인기는 한동안 잠잠하던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 다양한 담론이 오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쪽 편에는 ‘맨스티어는 힙합을 조롱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강경파가 있다. 이들은 맨스티어가 힙합의 핵심적인 문화 요소(노력을 통한 성장)를 무시한 채, 힙합을 개그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경파의 주장은 ‘코미디언이 힙합을 조롱하면 안 된다’고 하는 국내 힙합씬의 집단 무의식에 근거한다. 이들은 힙합을 초월적인 무언가로 의식하고 있으며 코미디언이 선을 넘는 순간, 즉시 반기를 든다.

그러나 강경파에 반론을 제기하는 온건파도 있다. 이들은 ‘맨스티어는 힙합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주장을 한다. 또한 맨스티어를 두 코미디언의 부캐로 봐야 하며, 힙합의 여러 요소를 개그의 소재로 활용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맨스티어의 콘텐츠는 힙합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의 자극적인 내용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강경한 입장을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온건파의 중론이다. 결국 이들은 맨스티어도 국내 힙합씬에서 새로운 형태의 래퍼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나도 맨스티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강경파 쪽에 마음이 기울었다. 맨스티어는 힙합의 본질적 가치인 허슬(Hustle; 꾸준히 노력하며 작업물을 제작하는 힙합의 태도)을 폄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콘텐츠는 힙합씬의 비루한 현실을 비꼬는 내용이었고, 작업물에서는 진실성 있는 태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해 힙합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맨스티어는 래퍼가 될 수 없는 ‘그냥 코미디언’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맨스티어의 콘텐츠를 다시 감상하며 온건파로 마음을 돌렸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허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개그 콘텐츠와 함께 맨스티어 관련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업로드하면서 힙합씬을 호기롭게 풍자했고, 본업이 있음에도 10여 개의 싱글 단위 작업물을 공개했다. 뷰티풀너드의 두 코미디언은 마치 래퍼라는 다른 자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성공을 열망하는 순수한 두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래퍼들과 허슬의 형태가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But Sorry to my mom

이제 내가 호강시켜 줄 테니 절대 걱정 마

맨스티어(Men’s Tear) – ‘AK47’ 가사 중

코미디언이 래퍼로 활동한 좋은 선례가 이미 있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래퍼 데프콘과 함께 결성한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다. 그들은 힙합에 코미디를 적절히 가미해서 유쾌한 랩 음악을 선보였다. 맨스티어도 ‘AK47’을 기점으로 장차 형돈이와 대준이처럼 더 유쾌한 랩을 보여주는 힙합 듀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허슬하는 태도를 꾸준히 고수한다면, 언젠가 국내 힙합씬에 새로운 파도를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께 뷰티풀너드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맨스티어의 ‘AK47’이 TJ노래방 랩/힙합 부문 인기차트에서 1위를 달성한 사진이었다. 맨스티어가 이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지 새삼 놀라웠다. 문득 노래방에 간 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얼른 AK47을 뱉어 봐야지. 우리 동네에도 밤마다 총성이 울린다고 침 튀기며 외칠 때다.